
Author's Note
베이징 남쪽 이좡(亦庄) 경제기술개발구. 올해 6월 새롭게 개관한 C관(智创馆, 지촹관: 스마트혁신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전 세계에서 몰려든 엄청난 인파와 전시장 곳곳에서 웅성거리는 모터 구동음이 단번에 현장의 뜨거운 열기를 실감케 했습니다. 전 세계 300여 개 로봇 기업과 2,000개가 넘는 핵심 부품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2026 세계로봇대회(2026 World Robot Conference ∙WRC 2026) 현장!
특히 이번 출장은 단독 참관이 아닌, 그룹 차원의 로봇 역량을 한데 모은 '합동 참관단'으로 현장을 누볐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 남달랐습니다.
HL만도의 액추에이터 선행 연구, SW 플랫폼, 부품 공급망(SCM) 전문 엔지니어들을 주축으로, 그룹 미래사업실, HL로보틱스, 모터 및 센서 개발 부문(MBCo, HL클레무브)인원들까지 합류해 밸류체인과 플랫폼, 모터, 센서까지 로봇 생태계 전반을 밀착 스캐닝했습니다. 로봇의 처음과 끝을 담당하는 각 분야 전문가들이 ‘원팀’으로 뭉쳐 전시장 곳곳을 다각도로 파헤친 셈이죠. 사흘 내내 매일 2만 보 이상 발품을 팔며 느낀 것은, 로봇 산업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산업 인프라를 갖추며 기술 발전을 이뤄내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올해 대회의 주제는 ‘인간과 기계의 공생, 산업과 수요의 융합(人机共生 产需共融)’. 과거 전시회가 "우리 로봇이 이렇게 잘 걷고 백덤블링도 잘합니다"를 뽐내던 기술 시연장에 가까웠다면, 이번 WRC 2026의 목표는 조금 달랐습니다. 현지 언론들의 표현처럼 "진짜 일을 하고(能干活), 현장에 납품되며(能交付), 실제 거래가 성사되는(能成交)" 로봇들이 전면에 배치되어 있었으니까요. 물론, 실용화를 강조하는 방향성에도 불구하고 선도 업체들과의 실제 성능과 기술 격차는 여전히 짚어볼 민힌 대목이었습니다.
합동 참관단 각자의 전문성을 시너지 삼아, 현장에서 피부로 느낀 시장 기류와 엔지니어 시선에서 얻은 기술 인사이트, 그리고 출장길을 마치며 가슴에 품고 온 고민들을 정리해 봅니다.
* 본 글은 개인적인 관찰과 소회를 담은 글로, 회사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1. "어디에 쓸 것인가"부터 정하고 시작하는 대륙의 로봇 생태계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개별 로봇 완제품이 아니라, 전시회의 ‘판을 짠 구조’ 그 자체였습니다.
우주 · 전력 · 자동차 · 통신 등 중국 기간산업을 이끄는 대형 국유기업(중앙기업)들이 대규모 전용관을 꾸려 입구 한가운데를 꽉 채우고 있었는데요, 로봇을 만드는 기술 기업 바로 옆에, 그 로봇을 수백 대씩 사서 공장과 현장에 투입할 ‘거대 수요처’가 나란히 짝을 맞춰 들어선 모습이었죠.
그 옆으로는 모터, 초소형 기어, 촉각 센서 등 특정 부품 하나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소거인(小巨人, 독보적인 기술을 가진 강소기업)'들이 촘촘하게 들어차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수요처 – 완제품 – 핵심 부품’으로 이어지는 튼튼한 사슬 구조가 전시장 동선 위에 고스란히 펼쳐진 모습이었습니다.
개발 목적 역시 군더더기 없이 명확했습니다. 기술부터 일단 만들어놓고 쓸 곳을 찾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지루하고(Dull), 어렵고(Difficult), 위험하고(Dangerous), 더러운(Dirty) 이른바 '4D' 현장을 명확히 타깃팅하여 ‘어느 작업에 넣어 무슨 일을 시킬지’ 확정해 두고 개발에 뛰어드는 분위기였습니다.
전시장 한편에서는 마치 자동차 매장에서 차를 사고 정비를 받듯 로봇을 전시 ▪ 판매하고 사후관리(AS)까지 해주는 '체화지능 로봇 4S점(Sales, Spare Parts, Service, Survey) '이나, 로봇을 현장에서 바로 결제해 집으로 배송받는 ‘로봇 소비거리’ 개념까지 볼 수 있었습니다. 단순 연구개발을 넘어 판매와 유지보수라는 실제 산업 인프라까지 쾌속으로 구축하고 있는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2. 폼팩터의 실용적 진화: 이족보행의 화려함보다 ‘바퀴(Wheel)’와 ‘정밀한 로봇 손’
기술적인 측면에서 이번 전시를 관통한 핵심 키워드는 단연 '실용성'이었습니다. 로봇의 외형 구조(Form Factor)가 지극히 현실적으로 바뀌고 있었기 때문인데요, 메인 부스를 점령한 건 두 발로 사뿐사뿐 걷는 로봇이 아니었습니다.
두 발 대신 바퀴(Wheel)를 달고 신속하게 이동하며 상자를 나르고, 부품을 조립하는 바퀴형 휴머노이드(GALBOT, HIKROBOT 등)가 대세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평평하게 잘 닦인 공장이나 물류센터 바닥에서는 굳이 제어가 까다롭고 에너지 소모가 큰 이족보행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 때문이겠죠.





이동 속도와 작업 안정성은 확실히 챙기고 단가는 파격적으로 낮춰, 당장 현장에 투입하겠다는 현실적인 계산까지 반영된 결과일 텐데요, 4족 보행 로봇 역시 순찰, 소방, 국방 등 뚜렷한 산업 목적에 맞춰 크기와 형태를 다변화하며 본격적인 양산 궤도에 올라선 모습이었습니다.
또 하나 눈길을 사로잡은 건 ‘덱스터러스 핸드(Dexterous Hand)’ 전문 부스들의 폭발적 증가였습니다. 로봇이 현장에서 컵을 집고, 세탁물을 분류하고, 미세한 버튼을 누르려면 결국 사람 손과 같은 ‘섬세한 손재주’가 핵심인데요, 사람 손을 빼닮은 5지 로봇 손과 촉각 센서, 초소형 모터 모듈만을 전문으로 들고나온 부스마다 관람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로봇 손 자체가 휴머노이드의 가장 가치 있는 ‘독립 모듈’로 완벽히 자리매김했음을 실감할 수 있는 장면이었죠.





3. 하드웨어와 제어 기술: 엔지니어 시선으로 본 주요 관전 포인트
로봇의 관절 역할을 하는 구동계(Actuator, 모터+감속기+제어기 통합 모듈) 부스를 하나하나 살펴보며, 엔지니어로서 기술적으로 눈여겨본 기술적 포인트는 크게 네 가지였습니다.
1) 관통형 중공(Hollow) 구조의 표준화
로봇 관절 중심부가 도넛처럼 뚫려 있어, 배선이 내부로 깔끔하게 관통하는 중공 구조가 업계의 기본 사양으로 확실히 자리 잡았습니다. 배선이 외부로 노출되면 조립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꺾임이나 쓸림으로 인한 내구성 저하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2) 소재 경량화와 입체 방열 기술
열이 적게 발생하는 부위에는 PEEK(고성능 플라스틱)나 마그네슘 다이캐스팅(주조) 하우징을 적극 도입해 무게를 덜어냈고, 열을 빠르게 방출해야 하는 핵심 부위는 3D 금속 적층(프린팅) 공법으로 경량화와 출력 밀도를 동시에 잡아낸 시도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관절 모터 규격 역시 Φ50, Φ70, Φ80, Φ100(mm) 등으로 깔끔하게 세분화·표준화되는 추세였습니다.

3) EhterCAT 통신 기반의 시스템 레벨 제어
단순히 관절 하나만 움직이는 단품 제어를 넘어, 로봇 전신의 관절들이 1초에 수천 번씩 초고속으로 데이터를 주고받는 EtherCAT (로봇 전용 초고속 저지연 통신 규격) 제어가 상위 업체들의 필수 표준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외부 충격을 받아도 관절이 뻣뻣하게 굳지 않고 스프링처럼 유연하게 받아넘기는 전신 순응(Compliance) 힘 제어 알고리즘이 크게 강조되고 있었습니다.
4) 인덕티브(Inductive) 센서의 대세화
로봇 관절의 회전 각도를 읽어내는 센서 부문에서는 기존 자석(마그네틱) 방식보다 먼지, 기름, 진동이 많은 험한 현장에서도 높은 정밀도와 내구성을 유지하는 인덕티브(전자기유도) 방식 듀얼 엔코더 채택이 눈에 띄게 늘어난 모습이었습니다.
5) 모터 사양 표준화 및 실속형 제조 생태계
모터 및 액추에이터 단위의 부품 사양을 면밀히 들여다보니, 흥미로운 흐름이 보였습니다.중국 휴머노이드 산업의 기술 트렌드는 독자적인 모터 토폴로지 구축을 위한 연구개발보다는 이미 형성된 다양한 휴머노이드 생태계를 활용해 ‘개발 속도’를 극대화하고 ‘고객 맞춤 대응력’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하우징 없이 코어만 공급받아 관절에 직결하는 프레임리스 내전형(Frameless Inner-rotor)모터가 대부분의 제품 사양을 차지하고 있었고, 다양한 휴머노이드 핸드 업체의 등장에 따라 초소형 모터 라인업 또한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였습니다. 강력한 제조 인프라와 공급망의 힘을 바탕으로 시장 요구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제조 생태계의 저력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4. 참관을 마치며: 현장에서 정리한 핵심 질문과 답
출장 일정을 마무리하며 밤늦게 진행된 참관단 종합 회의(Wrap Up Meeting) 현장. 2만 보를 걸은 피로도 잊은 채 현장에서 각자가 느낀 경각심과 기회에 대해 치열한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그 치열했던 고민들을 Q&A로 정돈해 봅니다.
Q1. 현지 로봇 기술, 실제로 상용화 수준인가?
A. 이미 광산, 물류, 제조 등 산업 현장에 로봇을 대량 투입하여 폭발적인 실증 데이터를 24시간 쌓아 올리고 있습니다. 다만, 튼튼하고 정교한 움직임을 구현하는 ‘액추에이터’ 하드웨어 분야는 여전히 더 높은 완성도가 요구되고 있습니다. 하드웨어 완성도가 로봇 상용화의 핵심 과제로 떠오른 지금이 우리 액추에이터 사업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Q2. 왜 바퀴형(Wheel) 로봇의 적용이 급증했는가?
A. 초기 상용화의 핵심은 단가와 효율입니다. 평지 작업에 굳이 어렵고 비싼 이족보행을 고집할 이유가 없으며, 바퀴형 구조가 제조 단가를 낮추고 실속을 챙기기에 훨씬 유용하기 때문입니다.
Q3. 글로벌 부품 생태계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A. 가격 경쟁력과 개발 속도 면에서 강점이 있는 해외 공급망을 무조건 배제할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지정학적 리스크에 선제 대응하는 'Dual SCM(공급망 다변화 및 이중화)' 전략을 정교하게 구축해, 시장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두는 게 핵심입니다.
Q4. 로봇 사업 가속화를 위한 시급한 과제는 무엇인가?
A. 검증된 글로벌 부품 Pool을 기민하게 활용하는 동시에, 국내외 유수 연구기관 및 글로벌 선도 기업들과의 전략적 협업을 통해 로봇 팔(Arm)을 비롯한 시스템 레벨의 애플리케이션 개발 경험을 조속히 확보해야 합니다.

전시장을 뒤로하며 머릿속을 가득 채운 건 기술 자체에 대한 감탄보다, '우리가 마주한 변화의 속도'에 대한 냉정한 위기감이었습니다. 수많은 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내부 경쟁을 치르면서도, 거대한 부품 생태계의 그물망 안에서 서로 탄탄하게 연대하며 시장을 확장하고 있었으니까요.
현장에서 피부로 느낀 가장 큰 울림 역시 단순한 스펙 경쟁이 아닌, 기민하게 움직이는 생태계 전체의 속도감이었습니다. 엔지니어로서 깊은 자극과 경각심을 동시에 느끼고 돌아온 출장길이었죠.
하지만 거센 파도 속에서도 본질은 언제나 명확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술 그 자체보다 변화의 방향을 정확히 읽고, 이를 민첩하게 실행으로 옮기는 것! 이번 WRC 참관에서 확인한 기술 트렌드와 현장의 인사이트를 발판 삼아, 완성도 높은 모듈 패키징과 시스템 솔루션을 차근차근 완성해 나간다면, 격변하는 로보틱스 시대에 우리만의 궤적을 그려나갈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