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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

[The Navigator : HL의 시선] EP.04 엔지니어링은 기능이 아니라 신뢰를 설계하는 일

엔지니어링은 ‘기능’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신뢰’를 설계하는 일입니다.”

혁신의 속도가 그 어느 때보다 빠른 모빌리티 시대, 결코 변하지 않아야 할 엔지니어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개인의 역량을 넘어 탁월한 시스템으로 압도적인 품질을 완성해 내는 HL만도 배홍용 CTO. 대한민국 조향 기술의 산증인이 전하는 엔지니어링의 정석을 지금 그의 인터뷰를 통해 확인해 보세요.

SECTION 1. The Frontier : 30년 현장의 자부심과 미래 통찰

1. 1993년 입사 후 대한민국 조향 기술의 국산화를 현장에서 직접 이끄셨습니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기술은 빛의 속도로 변하지만, 엔지니어라면 끝까지 붙잡아야 할 ‘가장 중요한 본질’은 무엇입니까?

기술의 트렌드는 빠르게 바뀌지만, 엔지니어가 내리는 판단의 본질은 늘 세 가지 축 위에 서 있어야 합니다. 바로 과학적 근거, 시스템적 시야, 그리고 윤리적 책임입니다.

엔지니어링은 단순히 기능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신뢰를 설계하는 일입니다. 기술이 아무리 고도화되어도 엔지니어의 판단은 언제나 검증된 이론과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야 하며, 내가 만드는 부품 하나가 시스템 전체, 나아가 이 차를 타는 사람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되는지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되 근거 없는 모험이 아닌, 선배들이 오랜 시간 축적해 온 지식을 디딤돌 삼아 전체 시스템을 조망하는 태도, 그것이 시대가 변해도 절대 타협할 수 없는 엔지니어의 진짜 기본기입니다.

2. 국내 최초 EPS 개발부터 CES 혁신상 수상까지, 사실상 대한민국 조향 기술의 역사를 써오셨습니다. 수많은 '최초'의 기록을 남기실 수 있었던 부사장님만의 방식은 무엇인가요?

저는 설계를 ‘끊임없는 업데이트의 무한한 사이클’이라고 정의합니다. 사실 한 번에 완성되는 완벽한 설계는 존재하지 않기에, 끊임없는 테스트를 통해 정합성을 맞춰가는 과정 자체가 곧 엔지니어링이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최초'의 과제들은 당연히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가 고집했던 원칙은 '최대한 빨리 실패하는 것'이었습니다. 검증을 뒤로 미루다가 양산에 임박해 터지는 문제는 조직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지만, 개발 상류에서 마주하는 빠른 실패와 피드백은 오히려 가장 값진 자산이 됩니다.

이론적 베이스 위에서 빠르게 시도하고, 그 데이터로 시스템을 즉각 업데이트해 나가는 것, 그것이 제가 수많은 최초의 타이틀을 안전하게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던 비결입니다.
3. 이제 자동차는 단순한 탈 것을 넘어 ‘인간 중심의 모빌리티’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전문가의 눈으로 보실 때 5년 뒤, 우리의 일상을 가장 변화시킬 ‘게임 체인저’는 무엇일까요?

AI와 데이터(Data) 기반의 구조적 전환입니다. 자동차 산업은 이미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인 SDV(Software Defined Vehicle)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으며, 이는 머지않아 SDR(Software Defined Robot, 소프트웨어 중심 로봇)로 자연스럽게 확및 수렴될 것입니다. 

결국 자동차와 로봇은 하나의 지점에서 만나는 컨버전스(Convergence) 관계에 있습니다. 미래의 자동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인간의 일상을 적극적으로 돕는 ‘고도화된 지능형 모빌리티 로봇’의 역할을 수행하게 될 테니까요.

우리 역시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에 발맞춰, 전통적인 자동차 부품사를 넘어 로보틱스 기술이 융합된 ‘AI 기반의 미래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비즈니스의 지평을 확장하는 거대한 변곡점 위에 서 있습니다. 지금 HL만도가 치열하게 준비하고 있는 SDV는 결국 이 다가올 융합의 시대를 주도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기술적 토대가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SECTION 2. 시스템의 실력과 품질

4.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빅테크 기업들이 결코 단기간에 넘볼 수 없는 ‘HL만도만의 본질적 경쟁력’은 무엇입니까?

빅테크 기업들이 엄청난 자본과 소프트웨어 기술로 모빌리티 시장에 뛰어들고 있지만, 그들이 복제할 수 없는 단 하나는 지난 60년간 자동차의 '움직임(Safety & Chassis)'을 책임지며 뼈저리게 쌓아온 레거시 경험입니다.

자동차는 스마트폰과 다릅니다. 오작동 시 리부팅하면 그만인 영역이 아니라,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영역입니다. HL만도에는 전 프로세스에 '안전과 품질'이라는 DNA와 원칙적인 판단 기준이 완벽하게 녹아들어 있습니다. 오랜 시간 수많은 차종을 양산하며 축적한 데이터와 이를 기반으로 한 철학(Discipline)은 결코 몇 년 만에 만들어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단순한 기술 추격을 넘어 현장을 중시하는 우리만의 굳건한 레거시 경쟁력을 디딤돌 삼아 진화하는 것. 그것이 HL만도만의 가장 강력한 헤리티지 입니다.
5. 부사장님의 핵심 철학 중 “실수는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의 결함”이라는 말씀이 인상 깊습니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면, 조직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방어해야 할까요?

저 역시 젊은 시절, 선배들의 설계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제 판단만 믿고 설계를 변경했다가 양산 직전에 문제를 겪은 적이 있습니다. 개인의 시야가 시스템의 검증을 벗어났을 때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가 나오는지 뼈저리게 배운 셈이죠.

이후 리더가 되면서 가장 깊게 고민한 개념이 바로 감당할 수 있는 한계선의 설정입니다. 완벽한 인간은 없기에 실수는 늘 발생합니다. 중요한 것은 구성원이 판단의 오류를 겪었을 때, 그것이 조직 전체를 흔들지 않도록 상한선을 그어주는 것입니다. 저는 이를 안전 가드레일이라고 부릅니다.

리스크가 유리막 밖으로 터져 나가지 않게 시스템으로 보호막을 쳐주는 것입니다. 이 가드레일이 견고하다는 믿음이 있을 때 엔지니어들은 안심하고 도전하며, 더 빠르게 혁신할 수 있습니다.

개인이 짐을 홀로 지지 않도록 초기 단계부터 치밀한 설계 검토를 거치고, FMEA (잠재적 고장 형태 및 영향 분석)를 통해 잠재 고장을 구조적으로 제거하며, 문제가 발생하면 현상 파악부터 재발 방지까지 8단계로 원인을 추적하는 8D 프로세스(8 Disciplines Problem Solving)로 가드레일을 보수하는 '시스템적 체계'가 유기적으로 작동해야 합니다.
6. 제품이 고도화되면서 혼자서 완벽한 결과물을 내는 것은 불가능해졌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HL만도는 어떤 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까?

지금의 모빌리티는 기계, 전기전자, 소프트웨어가 융합된 복합 시스템입니다. 내가 모르는 영역, 그리고 동료가 놓칠 수 있는 불확실성을 잡아내기 위해서는 '동료 검토(Peer Review)'가 필수적입니다. 이를 위해 만도는 최근 Engineering Quality 조직을 신설하고, HPDS(HL Product Development System)라는 거대한 표준 프로세스를 도입했습니다.

최종 제품만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설계의 '과정' 자체를 정합성 있게 검증하고, 개발 상류 단계부터 동료들이 상호 리뷰할 수 있는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입니다. 제품 검증은 단순히 품질 팀의 업무가 아니라, 설계의 핵심 축이자 우리만의 소중한 소통 프로세스입니다.

7. 최근 글로벌 모빌리티 시장, 특히 신흥 기업들의 개발 및 양산속도가 전례없이 빠릅니다. 이러한 거센 속도전 속에서 HL만도는 어떤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습니까?

최근 글로벌 무대에서 신흥 플레이어들이 보여주는 압도적인 스피드는 기존의 산업 생태계에 큰 경각심을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리더는 위기감을 느끼는 데서 그치지 않고, 흔들림 없는 지속 가능한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우리의 답은 그들의 방식을 단순히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과 기술의 탁월함(Engineering Excellence)'으로 정면 대응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HL만도는 AI 기반의 제품 개발 프로세스 시스템인 AX PLM과 글로벌 협업 툴인 컨플루언스(Confluence)를 전격 도입했습니다. 구두 소통만으로는 이 거대한 속도의 파도를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이죠. 시스템이 소통을 인터랙티브하게 만들고, 인간이 놓칠 수 있는 틈을 AI가 미리 걸러내 주도록 구조를 혁신하는 것입니다.

엔지니어들의 마인드셋,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지능형 시스템의 조화. 이 모든 것들이 축적된 ‘탁월한 엔지니어링’이야말로 HL만도가 글로벌 시장의 속도 압박을 뚫고 고객에게 굳건히 신뢰받는 혁신을 이뤄내는 방식입니다.

SECTION 3. 리더의 철학과 인재

8. 30년 전 부사장님처럼 꿈을 키우는 후배 엔지니어들에게 꼭 필요한 ‘마음가짐’ 하나만 꼽아주신다면요?

AI가 방대한 데이터를 계산하는 시대에도, 결국 문제의 맥락을 정의하고 최종 판단의 주도권을 쥐는 것은 ‘인간 엔지니어’의 몫입니다. 앞으로의 엔지니어는 AI를 적극적인 협업의 동반자로 받아들이되, 과학적·시스템적·윤리적 기준 위에서 판단하고 그 결과를 끝까지 책임을 지는 태도를 갖춰야 합니다.

이 견고한 기본기 위에서 AI와 협업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치열한 시장 속에서도 대체 불가능한 진정한 엔지니어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과학적 근거, 시스템적 시야, 그리고 윤리적 책임이라는 견고한 기본기 위에 서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혁신이 시작됩니다.

구성원이 안심하고 도전할 수 있도록 든든한 '가드레일'이 되어주는 조직, 동료와 상호 리뷰하며 함께 성장하는 문화. HL만도는 지금 이 순간에도 '생각하는 엔지니어'들과 함께 모빌리티와 로봇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