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익숙한 틀을 과감히 깨고 미지의 영역으로 나아가는 불굴의 개척 정신. HL그룹 창업주 운곡(雲谷) 정인영 명예회장의 철학을 계승한 그룹 최고 권위의 포상 ‘운곡상’이 품고 있는 핵심 가치입니다.
올해 제18회 운곡상 시상식에서는 모두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 뜻밖의 순간이 있었습니다. ‘Innovator’, ‘Pioneer’, 그리고 올해 신설된 ‘Disruption’ 부문까지 정규 시상이 모두 끝난 후 깜짝 발표된 ‘특별상’의 주인공, 바로 HL만도 이정석 부사장이 호명된 순간이었죠.
인도와 미국, 멕시코를 무대로 글로벌 비즈니스의 최전선에서 활약해 온 이정석 부사장. 그는 서로 다른 시장 환경과 경영 과제 속에서 해외 법인들의 수익구조를 개선하고 흑자 전환을 이끌며 HL만도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묵묵히 기여해 왔습니다.
위기 앞에서도 결코 멈춰 서지 않았던 14년의 시간, 그 치열했던 궤적의 중심에는 언제나 차가운 ‘숫자’가 아닌 뜨거운 ‘사람’이 있었습니다. 위기를 성장의 동력으로 바꾼 이정석 부사장의 진솔한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SECTION 1. The Turnaround : 신뢰를 쌓고 변화의 돌파구를 열다
Q1. 인도, 미국, 멕시코 세 법인을 모두 성공적인 턴어라운드로 이끄셨습니다. 낯선 환경에 부임해 현지 구성원들의 굳게 닫힌 마음을 열고 변화를 이끌어낸 첫 단추는 무엇이었나요?
부임 직후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항상 똑같습니다. 현장과 데이터에 기반해 상황을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진단’하는 거죠. 문제의 본질을 명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세워진 전략은 결국 공허한 구호에 머물게 되니까요.
진단이 끝나면 5년 뒤 우리가 나아가야 할 청사진을 그리고, 이를 다시 3년 단위의 구체적인 실행 계획으로 세분화합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리더가 일방적으로 방향을 지시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직원들의 일상적인 업무가 이 방향성과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야 하죠. 그래서 구성원들이 스스로 ‘아, 내가 오늘 현장에서 하는 이 일이 회사의 미래와 이렇게 연결되는구나’를 깊이 공감할 때, 비로소 조직 전체가 한마음으로 묵직하게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Q2. 특히 인도 법인의 ‘국산화’와 ‘원가 구조 혁신’은 뼈를 깎는 고통이 수반되는 과제였다고 들었습니다. 지루하고 험난한 여정 속에서 구성원들이 지치지 않고 끝까지 뛰게 만든 부사장님만의 소통 전략은 무엇인가요?
제 유일한 소통 원칙은 ‘우리 회사가 마주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투명하게 공유하자’는 것입니다. 당시 경영진 선에서만 공유되던 재무 지표를 과감하게 꺼내어 전 직원에게 보여주고 솔직하게 상황을 나누었습니다.
어려운 현실을 숨기지 않고 직원들과 함께 마주하니 오히려 끈끈한 공감대가 생기더군요. 그 바탕 위에서 "Survival & Rehabilitation plan(생존 및 회생 계획)"을 흔들림 없이 추진할 수 있었습니다.
소통이라는 건 그저 듣기 좋은 말을 반복하는 게 아닙니다. 아픈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어(공유), 마음을 움직이고(공감), 끝까지 결과를 함께 만들어가는 것(실행). 이 단단한 흐름이야말로 험난한 과정을 묵묵히 버티게 해준 진짜 동력이었습니다.


Q3. 미국 법인에서는 ‘새롭게 태어난다 (Born Again)’는 각오로 단 2년 만에 흑자 전환을 이루셨습니다. 오랜 관행과 타협하지 않는 쇄신 과정에서 누구보다 외롭고 힘들었을 순간, 부사장님을 지탱해 준 힘은 무엇이었나요?
수십 년간 익숙해진 시스템을 개선하고 새로운 기준을 정착시키는 일, 당연히 진통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기존의 방식에 익숙했던 구성원들에게는 큰 변화이자 도전이었을 테니까요. 리더로서 그 무게를 감당하는 일은 생각보다 깊은 책임감과 중압감을 동반했습니다.
그 캄캄한 순간에 저를 버티게 해준 건 다름 아닌 ‘우리 회사의 다음 10년을 준비해야 한다’는 절박함이었습니다. 기업의 진짜 경쟁력은 특정 지역에만 편중되지 않는 포트폴리오의 균형에서 나오거든요. 인도에서 ‘Next China’를 준비했다면, 미국과 멕시코에서는 ‘Next India’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당장 눈앞의 저항에 흔들리거나 적당히 타협하고 싶을 때마다, ‘오늘의 뼈아픈 결정이 우리 회사의 10년 뒤 생존을 결정한다’는 확신 하나로 버티며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SECTION 2. Global Resilience : 스스로 성장하는 조직으로
Q4. 멕시코 법인에서는 각 부서의 이기주의를 깨고 끈끈한 협업을 이끌어내셨습니다.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어 현지 구성원들이 공동의 목표를 향해 함께 뛸 수 있도록 조율하신 구체적인 방법론이 궁금합니다.
백 번의 화려한 연설보다 훨씬 강력한 건, 리더가 직접 회사의 현실과 방향성을 진정성 있게 반복해서 짚어주는 타운홀 미팅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왜 이 험난한 과정을 함께 넘어야 하는가”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해야만 부서 간의 보이지 않는 장벽이 허물어지거든요.
멕시코 법인 안정화 초기, 현지 매니저들이 다들 지치고 힘들어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타운홀 미팅을 열고 직원들 눈을 하나하나 맞추며 이렇게 진심을 전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아주 캄캄하고 긴 터널 한가운데를 걷고 있습니다. 여기서 멈춰 서서 뒤로 도망칠지, 아니면 다 함께 끝까지 뚫고 나갈지 여러분이 직접 결정하십시오. 하지만 저는 확신합니다. 딱 1년 뒤, 우리는 이 터널을 벗어나 다 같이 웃고 있을 겁니다.”
이 진심이 닿고 비전이 투명하게 공유되니, 굳이 지시하지 않아도 조직이 스스로 뭉치고 움직이기 시작하더군요. 끈끈한 유기적 협업은 시스템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굳건한 ‘공감대’에서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Q5. 턴어라운드를 이루는 것보다 그 성과를 ‘지속’하는 일이 훨씬 어렵습니다. 리더 개인의 카리스마에 의존하지 않는 ‘지속 가능한 자생적 경영 체제’가 자리 잡았다고 판단하시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리더 개인의 역량에만 의존해 이끌어낸 성과는 결국 한계에 부딪히기 마련이죠. 제가 생각하는 진짜 자생력의 기준은 ‘조직이 얼마나 자발적으로 움직이고, 그 과정이 우리만의 문화로 완전히 내재화되었느냐’입니다.
‘지속 가능한 성장(Sustainable Growth)’이란 건 지시에 이끌려 마지못해 할 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구성원 스스로 “아, 이 일이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하구나”를 공감하고 주도적으로 나설 때 완성되죠. 현지 리더들이 자발적으로 타 부서와 스스럼없이 협업을 주도하고, 자신의 자리를 이을 후배 리더들을 직접 키워내기 시작할 때,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아, 이제 이 조직이 진정한 자생력을 갖추었구나’ 라는 확신을 얻습니다.
SECTION 3. The Navigator : 다음 도전을 향해
Q6. “세 번의 턴어라운드에는 언제나 분명한 목표와 함께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운곡상 수상 소감이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 속에서도 구성원들을 하나로 뭉치게 한 ‘리더 이정석’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어떤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일관성’ 아닐까요? 사실 현장에서는 매일같이 크고 작은 운영 이슈가 발생합니다. 눈앞의 현안에만 매몰되다 보면 비전을 놓치기 십상이고, 거창한 비전만 이야기하면 직원들은 현실과 괴리감을 느끼게 되죠. 당면한 문제는 기민하게 해결하면서도, 회사의 미래를 좌우할 전략 과제는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일관되게 추진해 나가는 뚝심이야말로 구성원들에게 굳건한 믿음을 줍니다.
그리고 굳이 하나를 더 꼽는다면, ‘인간적인 솔직함’이 아닐까요? (웃음) 일터에서는 치열하게 고민하고 깐깐하게 업무를 챙기더라도, 일과 후에는 동료들과 소주 한잔 기울이며 제 부족했던 점을 털어놓고 사과할 줄 아는 여유 말입니다. 굳게 닫힌 문을 여는 건 리더의 완벽함이 아니라, 바로 그런 투박하지만 서로에게 진심으로 다가가는 진솔함에 있다고 믿습니다.


Q7. 지금 이 순간에도 글로벌 비즈니스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하는 HL만도의 후배 리더들에게 세 번의 턴어라운드 경험을 관통하는 ‘위기 극복의 멘탈리티’를 한 마디로 조언해 주신다면요?
거창한 조언이라기보다는, 제가 현장에서 부딪히며 배운 점을 조심스레 나누고 싶습니다. 거대한 위기가 눈앞에 닥쳤다는 건, 역설적으로 ‘우리가 체질을 개선하고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기회의 폭이 그만큼 넓어졌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단 한 번의 마법 같은 결정이나 일시적인 미봉책으로 단숨에 해결되는 위기란 세상에 없어요.
결국 가장 확실한 정답은 흔들림 없는 목표를 세우고, 이를 동료들과 끊임없이 나누면서, 작지만 의미 있는 실행을 묵묵히 이어가는 포기하지 않는 ‘끈기’뿐이더군요. 거대한 위기 앞에서 잠시 흔들릴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결코 멈춰 서지는 마십시오. 혼자서 모든 짐을 짊어지려 하기보다, 동료들에게 먼저 손을 내어주고 부대끼며 함께 길을 열어가 보시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지난 14년의 여정을 돌아보며, 어려움 속에서도 기회를 찾아 나아가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이 우리 만도의 굳건한 DNA임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이번 수상은 제 개인의 영광이 아닌, 인도와 미국, 멕시코를 비롯해 함께 땀 흘린 모든 동료들이 함께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그동안 받은 가르침과 경험을 든든한 후배들에게 온전히 이어가겠습니다.”
시상대 위에서 그가 전한 진심은 놀랍도록 단순하고 따뜻했습니다. 차가운 숫자와 굳어진 관행을 부순 것은 리더 한 사람의 독단이 아니었습니다. 위기의 골이 깊을수록 그 안에서 기회를 찾아내는 ‘회복탄력성’을 무기로, 투명하게 공감하고 끈끈하게 뭉친 구성원들이 함께 만들어낸 위대한 합작품이었습니다.
14년의 세월, 세 번의 위기를 넘으며 이정석 부사장이 증명해 낸 HL만도의 멈추지 않는 DNA, 이제 그는 그 단단한 위기 극복의 경험을 후배 리더들에게 물려주며 또 다른 내일을 향해 새로운 걸음을 내딛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