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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

[모빌리티 인벤터스] Ep.3 “0.001%의 위험도 타협은 없다” - 미래 조향 시스템(SbW)의 글로벌 표준을 세운 배재훈 팀장

Editor’s Note

자동차에서 ‘운전대’와 ‘바퀴’를 연결하는 기계적 금속 축을 완전히 끊어버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대한민국 조향 기술의 패러다임을 바꾼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수상한 배재훈 팀장을 만났습니다. 외산 기술이 독점하던 R-EPS 국산화부터 세계 최초 SbW(Steer-by-Wire) 독자 개발, 그리고 UN 글로벌 조향 법규 표준화 주도까지. 총 77건의 특허를 출원하며 강력한 기술 장벽을 쌓아 올린 배재훈 팀장의 집요한 엔지니어링 철학을 공개합니다.

 

국산 프리미엄 조향 기술(R-EPS)의 개척기

“외산 독점 시장에 던진 출사표, 원동력은 ‘원팀(One Team)’의 끈끈한 집단지성이었습니다.”

Q. 외산 기술이 독점하던 프리미엄 조향 시장에서 국내 최초로 R-EPS를 독자 개발하셨습니다. 황무지에서 ‘우리만의 조향 장치’를 처음으로 국산화했을 당시의 소회가 궁금합니다.

A. 배재훈 팀장: 당시 연구소는 다양한 고객사들을 대상으로 한 여러 R-EPS 양산 개발이 동시에 숨 가쁘게 진행되던 치열한 현장이었습니다. 프로젝트마다 목표는 다 달랐지만, 실제로는 서로의 경험과 문제 해결 과정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다 함께 성장하던 뜨거운 시기였죠. 선배 엔지니어들께서 선행 개발 단계에서 단단한 기술적 뼈대를 마련해 주신 덕분에, 양산 단계의 수많은 시행착오를 단단하게 극복해낼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국산화 성공의 가장 큰 원동력은 개인의 천재성이나 단독 의지가 아닌, 같은 목표를 향해 밤낮으로 함께 고민해 준 동료들과 선배님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려운 과제였지만 서로 이끌어 주고 밀어주었기에 국산 R-EPS 개발과 양산이라는 값진 결실을 맺을 수 있었으니까요. 

 

공간의 혁신, SbW의 발명

“기계적 연결을 끊어낸 SbW, 미래 모빌리티 환경을 준비하는 핵심 기반 기술이 되다.”

SbW (Steer-by-Wire) 시스템이란?
운전대와 바퀴 사이의 물리적(기계적) 연결을 완전히 제거하고, 오직 '전기 신호'와 '소프트웨어 제어'만으로 차량의 방향을 전환하는 차세대 첨단 조향 시스템입니다.

 

Q. 세계 최초로 운전대와 바퀴가 분리된 SbW를 개발하여 CES 혁신상을 수상하셨습니다. 물리적 연결을 끊는다는 파격적인 발상은 차량 내부 디자인까지 바꾸는 혁신인데요. 이 기술이 미래 SDV 환경에서 사용자에게 줄 가장 큰 가치는 무엇인가요?

A. 배재훈 팀장: SbW 기술은 기존 기계적 연결 중심의 조향을 전기 신호와 소프트웨어 제어 중심으로 확장하는 미래 모빌리티의 핵심 '기반 기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기술 덕분에 자율주행은 물론, 차량 실내 공간의 획기적인 변화와 SDV 환경에서의 다양한 기능 구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게 넓어진 것이죠. 

운전자 입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상황과 사용자 특성에 맞춘
유연한 조향감입니다. 예를 들어, 운전이 서툰 사용자에게는 주차나 고속 주행 시 조향 부담을 획기적으로 덜어주는 식이죠. 반면 운전에 능숙하고 드라이빙을 즐기는 사용자에게는 소프트웨어로 제어되는 가변 기어비 등을 통해, 기존 기계식 차량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웠던 완전히 새로운 주행 감각을 선사할 수 있습니다. 

글로벌 룰 메이커(Rule Maker)로서의 기술 리더십

"글로벌 표준화의 핵심은 기술의 한계를 직시하고 개선하려는 ‘인지적 겸손함’입니다."

Q. 기술 개발을 넘어 UN 조향 법규 전문가 그룹(ECE R79)에 참여해 국제 표준 개정을 이끄셨습니다. 대한민국 기술이 전 세계 시장의 ‘법적 기준’이 되도록 만드는 과정은 국가적 자부심인데요. 글로벌 표준을 주도하기 위해 엔지니어에게 필요한 역량은 무엇일까요?

A. 배재훈 팀장: 글로벌 표준을 제정한다는 건 결코 한 사람의 뚝심만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기술적인 깊이는 기본이고, 국제 법규와 시장의 요구를 아우르는 넓은 시각, 그리고 수많은 이해관계자들과 꾸준히 소통하는 끈기가 필수적이죠. 이 과정에서 구태윤 마스터님, 김태식 마스터님, 선태현 책임님, 그리고 유럽 MRE의 Jens를 비롯한 글로벌 동료들의 헌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표준화 활동은 단순히 우리가 만든 기술을 알리는 자리가 아니라, 글로벌 시장이 요구하는 초고수준의 안전성, 신뢰성, 검증 프로세스를 역으로 다시 치밀하게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발명가에게는불편함을 찾는 것이 출발점이라면, 엔지니어에게는 우리 기술의 한계를 겸허히 인정하고 이를 개선해 나가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의 부족함을 투명하게 마주하고 더 나은 대안을 찾아 나가는 태도야말로, 글로벌 룰을 움직이는 진짜 힘이기 때문이죠. 

 

77건의 특허 포트폴리오와 실패의 가치

"단단한 기술 장벽을 만든 힘은출원되지 못하고 특허 노트에 남은 ‘실패한 아이디어’들입니다."

배재훈 책임연구원 주요 발명 성과
• 지식재산권: SbW 핵심 기술 및 이중화 설계 관련 60건 등 국내외 특허 출원 77건 (강력한 기술 장벽 구축)
• 글로벌 어워드: 2021 CES 혁신상(VIT 부문) 수상 (SbW 시스템 세계 최초 독자 개발 공로)
• 글로벌 룰 메이커: UN 조향 법규(ECE R79) 내 SbW 시스템 반영 및 개정 주도

 

Q. SbW 관련 60건을 포함해 총 77건의 특허를 출원하며 강력한 기술 장벽을 구축하셨습니다. 특히 시스템 오류 시 백업 시스템이 작동하는 ‘이중화 설계(Redundancy)’로 안전성 한계를 극복하셨는데, 가장 애착을 느끼는 ‘결정적 발명’ 하나를 꼽아주신다면 무엇인가요?

A. 배재훈 팀장: 역설적이게도 가장 애착이 가고 기억에 남는 건 빛을 본 특허가 아니라, 사내 검토 과정에서 거절당했거나 끝내 신청으로 이어지지 못한 '미완성의 발명들'입니다. 아직 연구 노트 한구석에만 머물러 있는 아이디어들이 훨씬 더 자주 생각나곤 하더라고요.

물론 세상에 나온 77건의 특허도 값진 성과임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 화려한 결과물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실패의 탑이 쌓여 있어요. 어떤 아이디어는 기술적 완성도가 부족했고, 또 어떤 것은 사업성이나 차별성이 떨어지기도 했죠. 특히 SbW처럼 이용자의 안전과 직결되는 기술은 작은 아이디어 하나도 실제 시스템 안에서 어떤 나비효과를 불러올지 치열하게 검증해야만 합니다. 비록 탈락했을지라도 그 수많은 '안 된 이유'들이 모여 결국 더 완벽한 특허를 낳는 자양분이 되어주었습니다.

 

엔지니어링 원칙: 0.001%의 엣지 케이스(Edge Case)를 대하는 자세

"개발자에게는 0.001%의 확률일지라도, 운전자와 그 가족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100%의 사고입니다."

Q. 조향 시스템의 정밀도는 운전자의 생명과 직결됩니다. 팀장님께서 기술 개발 시 절대 타협하지 않는 자신만의 '엔지니어링 원칙'이 있으신가요?

A. 배재훈 팀장: 시스템을 설계할 때 '최악의 시나리오(Worst-case Scenario)'를 항상 디폴트(Default)로 세팅해야 한다는 철칙을 갖고 있습니다. 조향 장치의 결함은 곧 주행 중인 자동차의 제어 불능을 의미하기에, 단 0.001%의 가능성도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아무리 드물게 발생하는 엣지 케이스(Edge Case)라 하더라도, 이를 단순한 통계적 수치로 취급하는 순간 엔지니어의 자격은 사라집니다. 개발자에게는 수만 분의 1 확률일지 몰라도, 도로 위의 운전자와 그 가족에게는 단 한 번의 사고가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100%의 비극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기에 엔지니어는 희박한 확률의 위험마저도 언젠가는 반드시 발생할 수 있는 필연적인 상황으로 가정하고 집요하게 파고들어야 합니다. 

물론 물리적인 한계를 100% 완벽하게 없애는 건 불가능에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위험을 더 날카롭게 예측하고, 더 안전한 방향으로 설계된 기술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 한 끗 차이의 안전성을 완성하기 위해 끝까지 타협하지 않고 고민하는 것, 그것이 바로 엔지니어에게 주어진 숙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래 모빌리티의 비전과 후배들을 향한 제언

"빠른 기술 융합의 시대, '인지적 겸손함'을 바탕으로 더 안전하고 자유로운 이동을 완성하고 싶습니다."

Q. 마지막으로 변화하는 모빌리티 환경을 마주할 후배 엔지니어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와, 앞으로 조향 기술을 통해 구현하고 싶은 미래의 모습이 궁금합니다.

A. 배재훈 팀장: 앞으로 우리가 마주할 모빌리티 시장은 기계, 전자, 제어, 소프트웨어, 안전 기술이 무서운 속도로 결합하고 융합되는 시대입니다. 이런 대전환기일수록 자신이 가진 기존 데이터와 경험만을 과신하기보다, 끊임없이 배우고 흡수하려는 ‘인지적 겸손함’을 꼭 가졌으면 합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고, 모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비로소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고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과 진짜 협업을 시작할 수 있거든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나 보태자면, 연세가 드신 부모님께서 운전대를 잡으실 때마다 늘 걱정스러운 마음이 있습니다. 자신 된 입장에서는 매 순간 편안하고 안전하게 이동하셨으면 하는 바람이죠. 제가 앞으로 도전하고 구현하고 싶은 미래도 결국 이와 맞닿아 있습니다. 고도화된 조향 기술과 자율주행이 운전자의 신체적 부담을 덜어주고, 나아가 내 가족의 이동을 완벽하게 지켜주는 것. 그래서 세상의 모든 사람이 더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모빌리티 플랫폼을 완성하는 데 작게나마 끝까지 기여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