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 관세, 물류 대란, 그리고 최근의 AI발 반도체 품귀까지.
예측할 수 없는 변수가 매일같이 쏟아지는 시대, 글로벌 공급망을 지켜내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요?
코로나 시기 '반도체 비상TFT'를 시작으로, 원자재 폭등과 지정학 리스크를 거치며 HL만도의 구매 조직은 위기가 닥칠 때마다 흔들림 없이 대응해왔습니다. 그 중심에는 '가격 협상가'가 아닌 '공급망 리스크 설계자'를 자처하는 리더가 있습니다.
The Navigator 「HL의 시선」 여섯 번째 주인공은 HL만도의 구매를 총괄하는 김성일 CPO입니다. 가장 싼 가격이 아닌, 가장 무너지지 않는 공급망을 설계해온 그의 시선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HL만도의 구매 경쟁력을 들여다봅니다.
SECTION 1. 구매의 본질 : 가격 협상을 넘어선 '공급망 설계자'
Q1. 예측 불가능한 변수가 쏟아지는 요즘입니다. 과거 ‘단가 협상’ 중심이었던 구매 조직의 역할은 현재 어떻게 진화했습니까?
과거 구매의 핵심이 '얼마에 살 것인가'였다면, 이제는 '어떻게 공급망을 설계할 것인가'로 중심축이 완전히 이동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의 구매는 단순한 원가 절감을 넘어서, 사업의 연속성과 수익성, 그리고 고객의 신뢰를 동시에 지켜내는 '전략적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고 있죠.
지정학 리스크, 관세 장벽, 물류 불안 같은 통제 불가능한 변수가 일상이 된 시대잖아요. 이제 구매는 선제적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공급망의 가시성(Visibility)을 꿰뚫어 봐야 합니다. 제가 최근 구매의 역할을 '협상가'를 넘어 '공급망 리스크 설계자'라고 정의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특정 국가나 업체에 의존하는 구조를 과감히 탈피해서 거점을 다변화(De-risking)하고, 어떤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다원화된 공급 체계를 미리 구축해 두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결론적으로 가장 싼 가격을 찾는 구매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가장 복원력(Resilience) 높은 공급구조를 만드는 것, 그것이 오늘의 구매 조직이 증명해야 할 진정한 글로벌 경쟁력입니다.

SECTION 2. 현장 에피소드 : AI 부품 품귀 속에서 증명된 위기대응 TFT
Q2. 최근 AI 반도체 품귀 현상이 자동차 부품 구매 현장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에 어떻게 대응하고 계신가요?
최근 현장에서 가장 매섭게 체감하는 변수가 바로 ‘AI발 반도체 품귀’현상입니다. 파운드리들이 상대적으로 마진이 낮은 차량용 반도체 라인을 고부가가치 AI 반도체 생산으로 발 빠르게 전환하고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 저희가 필요로 하는 물량은 줄고 단가는 오르는 이중고를 겪고 있는 상황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반도체가 실장되는 기판(PCB)마저 품귀 현상을 빚고, 그 안에 들어가는 소재까지 연쇄적으로 부족해지는 ‘풍선 효과’가 전체 공급망을 타고 흐르고 있어요. 유가나 석유 파생 원자재 이슈 같은 경우는 저희가 사전 대응 체계로 어느 정도 안정화를 시켰지만, AI발 이슈는 시장의 구조적인 쏠림 현상인 만큼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과제입니다. 이를 돌파하기 위해 현재 대체 소싱과 다각적인 물량 확보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Q3. 위기가 닥칠 때마다 TFT를 가동해 오셨습니다. 이를 일회성 소방수가 아닌, ‘상설 위기대응 조직’으로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노하우가 궁금합니다.
위기라는 게 참 예고 없이 찾아오지 않습니까. 저희는 코로나 시기의 '반도체 비상상황실'을 시작으로 원자재 폭등, 중동 리스크에 이르기까지 이슈의 이름만 바뀔 뿐 대응 체계는 늘 상시로 가동해 왔습니다. 한 번 뭉쳤다 흩어지는 임시 조직이 아니라, 리스크가 터지면 즉시 반응하는 일종의 ‘상설 대응 근육’이 생긴 셈이죠.
이 TFT가 성공적으로 굴러가게 만드는 핵심 노하우는 크게 세 가지로 꼽을 수 있습니다.
첫째, '수요·공급 계획 기반의 선제적 대응'입니다. 단일 시점의 가격이나 재고만 보지 않습니다. 향후 수개월의 글로벌 수요 전망과 공급처 셧다운 리스크를 연동해서 안전재고 일수를 전략적으로 조절하는 거죠.
둘째, 'Sub-tier(하위 공급망) 맵핑과 신뢰 기반의 정보 공유'입니다. 협력사와 평상시 핫라인을 구축해서 원소재 조달 출처와 리드타임을 투명하게 맵핑하고 병목 요인을 실시간으로 추적합니다.
셋째, '시나리오별 컨틴전시 플랜의 상시화'입니다. 물류선이나 공급이 막히는 최악의 상황을가정해서 대체 소싱 공정 검증을 미리 끝내둡니다. 위기 발령 시에 즉각 발주 라우팅을 바꿀 수 있도록 의사결정 체계를 동기화해 두는 겁니다.
반도체 대란을 거치며 뼈저리게 다져진 이 위기대응 DNA가 새로운 변수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저희만의 든든한 무기가 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SECTION 3. 협력사 상생 : 밑단까지 아우르는 신뢰의 생태계
Q4. 하위 벤더(Sub-tier) 관리와 Scope 3 탄소중립 등 얽힌 이슈가 많습니다. 협력사들에게 어떤 ‘상생의 비전’을 제시하며 이 난제들을 돌파하셨나요?
하위 벤더의 공급망 정보는 사실 협력사 입장에서는 꽤 민감한 영업 자원이거든요. 처음에는 공개 자체를 꺼려하는 것이 당연하죠. 하지만 이 문제는 결국 '상생이라는 공동운명체의 논리'로 밖에는 풀 수가 없습니다. 부품 공급이 막히면 협력사 역시 매출을 잃게 되고, 협력사가 무너지면 우리도 함께 흔들립니다. 이 명확한 비전을 꾸준히 설득한 끝에, 지금은 하위 협력사의 정보까지 투명하게 축적해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최근 화두인 탄소중립도 같은 궤적에 있다고 봅니다. 당사가 제시한 탄소 저감 목표를 달성하려면 철강 등 원자재 단계에서의 생산 방식 전환이 필수적인데, 이건 필연적으로 원가 상승을 동반하거든요.
이때 발생하는 비용을 누가 짊어질 것인지, 목표 시점의 격차를 어떻게 줄일 것인지 일방적으로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협력사 상생이란 내가 원하는 조건을 억지로 관철시키는 게 아니에요. 밑단의 벤더들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로드맵을 치열하게 조율하며 뚜벅뚜벅 함께 걸어가는 ‘지속적인 여정’인 거죠.
SECTION 4. CPO의 딜레마 : 원가와 품질, 두 마리 토끼 잡기
Q5. ‘원가 절감’과 ‘품질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합니다. 최근 협력사 품질 인증(SQ)을 강화하면서도 수익성을 방어하는 부사장님만의 전략은 무엇입니까?
외부에서는 흔히 구매 조직이 오직 ‘원가’만을 깎으려 한다고 오해하시곤 하는데요. 사실원가와 품질은 톱니바퀴처럼 완벽하게 맞물려 돌아가야 합니다. 중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품질 확보가 곧 최고의 원가절감’이거든요. 품질이 담보되지 않은 단가 인하는 결국 불량, 재작업, 고객 클레임이라는 거대한 '실패 비용'을 낳고, 총비용(TCO, Total Cost Ownership)을 걷잡을 수 없이 악화시키니까요.
품질의 끈을 바짝 조이면서도 비용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저희의 전략적 축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설계 단계부터의 VE(Value Engineering) 공동 추진'입니다. 양산 단계가 아닌 개발 초기부터 협력사, 연구소, 품질 조직이 뭉쳐서 '사양 최적화'와 '공정 단순화'를 이뤄내는 EI(Early Involvement) 전략입니다.
둘째, '품질 인증 강화를 통한 공급망 정예화'입니다. 엄격한 인증을 통과한 역량 있는 협력사 중심으로 풀(Pool)을 압축하고, 이들에게 물량을 집중해 서로의 수익을 담보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갑니다.
셋째, '글로벌 거점별 맞춤형 최적화'입니다. 기술과 품질 기준은 엄격하게 통제하되, 시장 속도가 빠른 중국 등지에서는 현지 조달 비율을 높여 비용 효율성을 극대화합니다.
결론적으로 구매의 진정한 역할은 '가장 싼 부품을 찾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요구하는 엄격한 기준 안에서 가장 지속 가능한 원가 구조를 설계하는 것'입니다.
SECTION 5. 새로운 개척지와 인재 육성 리더십
Q6. '휴머노이드 로봇', 아크감지 센서 '해치(e-HAECHIE)' 등 기존 룰이 통하지 않는 신사업 영역에서는 어떤 구매 전략으로 임하고 계신가요?
모빌리티가 로봇 등 이종 영역과 융합될수록, 미래의 구매 전문가는 가격 협상가를 뛰어넘어 기술과 시장을 선제적으로 해석하는 '비즈니스 아키텍트'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로봇 부품이 자동차와 유사해 보이긴 하지만 타임라인 자체가 완전히 달라요. 자동차가 3~4년의 묵직한 호흡으로 간다면, 로봇 산업은 1년 안에 양산 결과물을 원하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기존의 발굴-샘플-검증-양산 프로세스를 과감하게 압축하는 전담 팀을 신설했습니다. 이들의 존재 이유는 단 하나, '가장 빠르게 업체를 찾아 가장 빠르게 양산 체계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아울러, 구매에 AI를 도입하는 것 역시 단순한 문서 자동화 수준이 아닙니다. AI가 글로벌 시황을 예측하고, HS Code를 자동으로 분류하며 리스크를 모니터링해 주는 동안, 우리 구성원들은 더 고차원적인 가치 창출에 집중하게 만드는 겁니다.
이를 바탕으로 제가 바라는 HL만도 구매 전문가의 모습은 세 가지입니다. 기술의 맥락을 읽는 '테크 기반 전략적 사고', 빅데이터로 리스크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디지털 실행력', 그리고 이종 파트너까지 부드럽게 아우르는 '오케스트라형 리더십'을 갖춘 인재들이죠.
Q7. 2021년부터 사내에 자체적으로 'Negotiation School'을 만들어 운영하고 계십니다. 어떤 문제의식에서 출발했고, 어떻게 운영하고 계신 지 궁금합니다.
구매의 본질은 결국 ‘협상력’에 있습니다. 하지만 값비싼 외부 단기 교육에 소수의 인원만 보내는 방식으로는 조직 전체의 기조를 도저히 바꿀 수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아예 자체 예산과 커리큘럼을 짜서 사내에 'Negotiation School'을 직접 열었습니다.

이 스쿨은 철저한 레벨(Level) 체계로 굴러갑니다. HL만도 구매 전원이 필수로 이수해야 하는 '레벨 0(협상의 기본 개념)'부터, Buyer 직무 인원들이 필수로 들어야 하는 ‘레벨 1 & 2’, 그리고 최정예 엘리트 코스인 ‘레벨 3’까지 단계별로 육성하죠. 실제 협상 사례를 주제로 그룹 스터디를 진행하며, 협상 솔루션을 도출하는 과정을 거쳐야 레벨 3를 수료할 수 있습니다. 레벨 3까지 수료한 인재들은 실제 글로벌 비즈니스 협상 현장에 직접 투입되어서 그 역량을 확실하게 증명해 내고 있고요.
협상은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체계적으로 훈련받고 검증될 수 있는 역량이라고 봅니다. 5년여간 쌓인 단단한 평판 덕분에 현재 HL클레무브 등 오토섹터 인원들 뿐만 아니라, 홀딩스 구매 인원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SECTION 6. 타협할 수 없는 원칙, 그리고 동반자들을 향한 메시지
Q8.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힌 협상 테이블에서 결코 타협하지 않는 단 하나의 '제1 원칙'은 무엇입니까?
단 하나의 원칙을 꼽으라고 하면 저는 주저 없이 '상호 생존을 담보하는 실질적 지속 가능성(Sustained Partnership)'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협상을 흔히 당장의 이익을 빼앗아 오는 '제로섬 게임'으로 생각하기 쉬운데요, 진정한 B2B 협상은 양사의 수익성을 사수하면서 안정적인 기반을 닦는 '연속적인 과정'이어야 합니다.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만 강요한다면, 결국 품질 저하나 공급 단절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더 뼈아픈 손실로 돌아오게 마련이거든요.
물론, 이게 무조건적인 양보나 온정주의를 뜻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철저한 원가 구조 분석(Cost Breakdown)과 팩트(Fact) 기반의 데이터를 저희의 무기로 삼습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수익성과 품질 가이드라인은 송곳처럼 단단하게 사수하되, 협력사가 비즈니스를 영위할 수 있는 마진과 리드타임 역시 확실하게 보호해 주는 거죠.
가장 훌륭한 협상은 상대의 양보를 쥐어짜 낸 협상이 아닙니다. 우리 회사의 이익을 완벽히 방어하면서도, 가장 오래 함께 갈 수 있는 튼튼한 공급 구조를 완성한 협상입니다.

Q9. 거친 파도를 함께 넘고 있는 글로벌 파트너사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 부탁드립니다.
글로벌 공급망 환경은 지정학적 변수부터 물류 이슈까지, 여전히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거센 파도 속에 놓여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 HL만도는 위기의 시기일수록 공급망의 본질은 결국 '투명한 신뢰'와 '악착같은 실행력'에 있다고 굳게 믿습니다. 리스크를 숨기기보다 서로 투명하게 드러내고, 단기적인 임기응변이 아닌 구조적인 해법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파트너십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입니다.
글로벌 파트너사는 저희에게 단순한 거래처가 아니라, HL만도의 미래 영토를 함께 개척해 나가는 '전략적 동반자'입니다. 품질과 원칙에는 타협 없이 엄격하겠지만, 파트너사의 혁신을 돕는 일에는 가장 열린 자세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드릴 것을 약속합니다.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간다고 하죠. 다가올 미래 모빌리티 시대의 거대한 기회 앞에서도, 서로에게 가장 예측 가능하고 굳건히 믿을 수 있는 최고의 파트너로서 동반 성장해 나가기를 기대합니다.
위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공급망은 결국 '투명한 신뢰'와 '악착같은 실행력'에서 나온다는 것.
김성일 CPO는 협상 테이블에서도, 협력사와의 관계에서도 이 원칙을 한결같이 지켜왔습니다. 상대에게서 가장 큰 양보를 얻어내는 협상이 아니라, 우리 회사의 이익을 지키면서도 가장 오래 지속될 수 있는 공급 구조를 만드는 것. 그것이 그가 정의하는 진짜 협상의 승리입니다.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갑니다. HL만도는 앞으로도 글로벌 파트너사들과 함께 흔들림 없는 신뢰를 쌓아가며, 다가올 미래 모빌리티 시대를 함께 개척해 나가겠습니다.
